여기 고층 빌딩이 수두룩한 '농촌'이 있습니다. 충남 아산시 배방읍 이야기입니다. 배방읍에는 KTX 천안·아산역과 대형 할인점 2곳, 30층 주상복합아파트에 번듯한 상가 건물이 있습니다. 충남에 있는 30층 이상 고층 건물의 90%가 이곳 배방읍 등 아산과 천안에 몰려있는데요. 그야말로 번화한 도심지인 셈입니다. 이런 배방읍이 '귀촌 통계' 상 농촌으로 분류됩니다. 귀촌 통계는 도시에서 살다 농촌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의 규모를 파악하는 자료인데요. 이 귀촌 통계가 배방읍을 농촌으로, 배방읍에 이사 오는 사람 중 일부를 '귀촌인'으로 보고 있습니다.
■ 나도 모르는 새 '귀촌인'
그런데 정작 배방읍 주민 상당수는 농촌이나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삽니다. 주민 중에는 지역에 있는 대기업 등에 다니는 사람이 많고요. 인근 대도시인 서울이나 대전으로 출퇴근하려고 KTX 역이 가까운 배방읍을 택하기도 합니다. 취재팀이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백화점이나 마트, 영화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배방읍을 택했다고도 했습니다. 도시 인프라가 좋아서 산다는 말입니다. 주민들은 그런 배방읍이 통계상 농촌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또, 자신이 '귀촌인'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황당하다고 했습니다.
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? 귀촌 통계가 도시의 '동' 지역에서 1년 이상 살다 '읍이나 면'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을 귀촌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.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나도 모르는 새 귀촌인이 되는 겁니다. 이런 식으로 계산된 귀촌인이 지난해 기준 아산에서만 12,000여 명이고 전국에서는 440,000여 명입니다. 실제 현실보다 과다 측정되고 있습니다.
아산의 귀농, 귀촌 지원 사업
■ 엉터리 통계, 수혜자 없는 정책
더 큰 문제는 이런 엉터리 통계를 근거로 지원 정책까지 쏟아진다는 점입니다. 충남도는 귀촌 통계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아산에 3만 명 넘는 귀촌인이 몰린 것으로 보고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. 기존 영농 농가와 귀농, 귀촌 농가를 연결해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고요. 농사지으라고 돈 빌려주기도 합니다. 아산에서만 10가지 넘는 귀농, 귀촌 지원 사업이 있습니다. 종류는 다양하지만, 전체 신청자는 20명도 되지 않습니다. 돕겠다며 펼친 손이 좀 민망해지는 상황이지요. 비단 충청남도 문제만은 아닙니다. 전국의 자치단체가 '귀촌 통계'를 근거로 귀촌 사업을 홍보하고 또 지원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. 그야말로 행정력 낭비인 셈입니다.
■ 귀촌 통계는 '행정 통계', "현실과 다를 수 있다"
이런 귀촌 통계를 직접 만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 입장은 어떨까요? 귀촌 통계는 행정 자료로 만드는 '행정 통계'라는 입장입니다. 인구 이동 등 관련 행정 자료로 만들기 때문에 현실과는 일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. 또, 읍과 면 지역을 농촌으로 보는 관련 법에 근거해 통계를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. 법적으로 근거도 있고 문제도 없다는 말이겠지요.
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. 현실과의 괴리를 감수하는 통계라면, 그저 있는 자료를 정리하는 통계라면, 또 그렇게 만들어진 통계가 오히려 수혜자 없는 정책을 만들어 행정력 낭비를 불러온다면 그 통계는 왜 만드는 걸까요? 농어촌의 실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보완책이 필요해 보입니다.